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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김원영

by 밤보우 2024. 7. 8.

모두의 서사가 대학 사회에 울려 퍼지기를/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인간은 삶이라는 여정에 고유한 서사를 부여하는 존재다. '저자성authorship'. 등장인물 성격을 설정하고 줄거리를 짜는 작가처럼 본인의 정체성을 성찰해간다는 의미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김원영 변호사는 저자성이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고 언급한다. 존엄에 우열을 나눌 수 없듯,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저자성에도 위계가 없음을 강조한다. 덕분에 장애인을 향한 오만한 인식을 뉘우치게 됐다. 지금껏 장애인은 자기 서사를 온전히 꾸려가기 힘들 거라고 짐작했었다. 아니, 애초에 장애인의 서사를 접한 적 있었나. 이 물음은 그간 대학 생활을 되짚게 했다. 장애 학생 서사를 듣기는커녕 그들과 시간을 보낸 경험 자체가 전무했다. 캠퍼스를 누비면서도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장애인을 마주칠 기회가 부재했다니. 그렇다면 장애 학생은 대학 입학에서 부당하게 배척당하는 실정일까. 아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4조(차별의 금지)는 장애 학생이 대학입학 과정에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해당 법률에 따라 대학은 장애를 이유로 그들의 입학을 거부하거나 교육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상하다. 피부에 와닿는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 2019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장애인구의 '대졸 이상' 비율은 13.6%였다. 반면 전체인구의 '대졸 이상' 비율은 38.6%에 달했다. 장애인구와 전체인구의 '대졸 이상' 비율이 3배나 차이 나는 셈이다. 덧붙여 전체인구의 교육수준에는 '대졸 이상'이 가장 많았으나, 장애인 교육 수준에는 '중졸 이하'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은 수도권 대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다. 수도권 8개 대학(경희대·고려대· 서강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중앙대·한양대)의 '전체 모집인원 대비 정원외 장애학생 모집 인원'을 비교해봤다. 그중 장애 학생 모집 비율이 가장 높은 대학은 서강대였다. 약 0.84%가 전체 학생 중 장애 학생 모집 비율이란다. 가장 낮은 대학은 본인이 다니고 있는 중앙대이며, 약 0.15%에 불과했다. 앞서 언급한 대학모두 단 1%에 도달하기에도 막막한 비율이다. 과연 대학의 문이 장애 학생에게 평등하게 열려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학 사회가 장애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실격시키며 비장애의 특권을 공고화하지 않았나. 일반부 장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김원영 28 관련해 '백신'이 떠올랐다. 백신은 낯선 병원체를 주입해 면역체계를 활성화하며 작용한다. 그렇다면 백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먼저 '외부에 놓인 타자'에 있다. 동일하며 친숙한 존재들로는 결코 면역체계가 강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직접적인 관계'가 필수다. 새로운 병원체에 대한 정보를 간접적으로 듣거나 배운다고 해서 면역체계가 강화되지 않는다. '낯선 존재가 몸에 직접 주입됐을 때' 적절한 항체를 갖출 수 있다. 결국 '익숙하지 않아 어쩌면 불편한 존재와 직면‘해야 한다.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의 목소리는 낯설고 불편하기도 하다. 김원영 변호사 지적처럼 우리 사회는 소수자들이 창조해온 이야기를 무시하며 한 사람의 정체성을 신체 기능에만 구겨 넣지 않았나. 나아가 장애인을 배제하며 비장애라는 다수자들의 특성만 내세운 건 아닌가. 그 결과 장애인에게 있어 저자성은 희미해지고 장애라는 꼬리표만 선명히 남게 됐다. 다시 저자성으로 돌아가, 자기 서사는 남이 집필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정체성은 스스로에게서 나올 뿐 누구도 대신 서술할 수 없다. 장애인은 진공상태에 놓여있는, 단순한 이론이나 논의 대상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그들은 같은 시공간 속 본인만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존재다. 그렇기에 장애를 찾을 수 없는 대학에서 장애에 대한 교육이나 논의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비장애인이 무한히 모인다고 해도 장애인 한 명의 정체성을 감히 예측하거나 판단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본인만의 저자성을 생생히 펼칠 수 있는 장애 학생이 절실하다. 대학은 백신의 핵심처럼 장애인과 직접 마주하고 관계하는 장이 돼야 한다. 비장애 학생은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장애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직접 눈을 맞추고 귀 기울여야 한다. 현실 속에서 장애 학생의 서사에 감응해야 한다. 이제는 '공명共鳴'할 때다. 우리는 같은 이의 목소리만 메아리칠 때 공명한다고 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존재들의 이야기가 울려 퍼질 때 비로소공명할 수 있다. 대학 사회에서 장애인의 고유한 서사가 울려 퍼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