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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화가 / 모니카 페트

by 밤보우 2024. 7. 8.

'바다로 간 화가'를 읽고 나는 모니카 페트 작가의 책을 참 좋아한다. 그녀의 책들은 대부분 아동 청소년들이 읽기 쉽도록 두께가 얇지만 아이와 함께 읽다보면 어른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볼 거리를 많이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의 시골 마을에 살면서 어릴 적 순수함과 상상력을 책 속에다 잔잔하게 담아낸다. 그리고세속적이고 외형적인 조건보다는 어쩌면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 집중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 그녀의 책에서 주인공들은 대개 보통 사람들은 딱히 주목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외형도 볼품없고 자신이 지닌 개성을 일부러 어필하지도 않지만 주변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꿋꿋하게 펼치며 소소한 행복을 이루어나가는 사람들이다. '바다로 간 화가'의 주인공인 노신사 화가도 시끌벅적한 도시에 살면서 소망하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바닷가 근처에 살면서 주변 풍경을 마음껏 그리며살아가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소박하지만 시골에서는 그림을 제값에 사주는 사람도 없고 푼돈을 벌 일자리도 없어 그는 오랫동안 꿈만 꾸면서 지내고 있었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거대한 장벽처럼 늘 앞을 가로막았지만 어느날 그는 굳은 결심을 한다. 가지고 있는 모든 세간 살이들을 정리해서 번 돈을 들고 그림을 그리려 바닷가 마을로 향한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가장 싼 집을 빌려 살았고 하루 종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풍경들을 그릴 수 있었다. 끼룩 끼룩대며 푸르른하늘을 가르는 갈매기, 따스한 햇빛을 받을 때마다 보석같이 색색이 빛나는 조개무지들, 쏴아아 시원하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는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은 늘 그림자처럼 귀찮을 정도로 따라붙게 마련이다. 당장 모아두었던 돈들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가엾게 여긴 섬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사주기도 했지만 더 이상 자신이 그리던 유토피아에서는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도시로 원치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손에 남은 것은 하얀 모래 한 뭉치, 조개 한 자루, 조약돌 한 웅큼, 그곳에서 그렸던 그림 한 뭉치가 다였다. 더 그리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경제적인어려움은 그의 꿈을 잠시 내려놓게 했다. 결국 그는 도시에 돌아와 바닷가에서 모았던 수집품들을 바라보며 기억들을 그림 속에 담아낸다. 직접 보고 그리지는 못하지만 과거 행복했던 잔상들을 모아 그려낸 마지막 그림이야말로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일반부 우수 바다로 간 화가 / 모니카 페트 22 그리고 믿기 어렵겠지만 그 그림을 통해서 다시 한번 그의 꿈이 실현된다. 그림 속 문이 갑자기 활짝 열리면서 늙은 화가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 다시 바닷가 근처에서 행복하게 살게 된 것이다. 박물관 벽에 걸려 있는 채로 늘 그림 속 문은굳게 닫혀 있지만 이따금씩 작가가 보러 갈 때마다 슬며시 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책을 함께 읽으면서 나의 공주님이 질문을 한다. "엄마, 우리가 이 그림 보러 갈때도 문을 열어줄까?"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답해주었다. "그럼, 문이 열리고들어가면 화가 할아버지도 만날 수 있고 어쩌면 함께 차 한잔 하러 들른 작가도 만날 수 있을거야. " 많은 아이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어릴 적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책을 읽고 나면 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마음 속 캔버스에다 원하는 것들을 알알이수놓아보았다. '비밀의 화원'을 읽고 나서는 지붕 위에 알록 달록 예쁜 화초를 얹어놓은 집 안에다 나만의 아지트를 여기 저기 숨겨놓고 싶었고, '보물섬' 책 속의 앵무새 같은 이국적인 동물들을 훈련시켜 기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처럼 악당이 숨겨놓은 금은보화를 파내러 동굴 탐험도 떠나고 싶고, 피아노를 열심히 배워 모차르트처럼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솜씨를 뽐내고도 싶었다. 지금 현실 속에서는 신기루처럼 붙잡을 수 없는 한여름밤의 꿈이지만, 어릴 적에 수놓았던 꿈들이 캔버스 속에 아로새겨져 이따금씩 잔잔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게 함에 감사하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어릴 때 꿈꾸던 동화 속 현실들과 마주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어릴 때는 원한다면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실패할 것 같더라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한번 발걸음을 떼 본다면 예상치 못했던 좁은 길이 한 가닥 펼쳐지면서 꿈과 가까운 곳으로이끌어주지 않을까. 그리고 늙은 화가처럼 남들에게 인정을 못받는 소박한 꿈일지라도 나에게 설렘과 행복을 준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떼며 나아가는 삶이야말로 진실로 보람있는 삶일 거라 믿는다.